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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 years ago

THE JAGUAR 0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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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재규어> 1호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, 새로운 전기 파워트레인의 개발을 한층 더 앞당기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의 세계를 살펴본다. 동시에 지금 바로 사전 예약이 가능하고 2018년 하반기에 출고 가능한 우리의 혁명적인 신 모델인 재규어 I-PACE 콘셉트 차량을 만나볼 수 있다.

동시에 LA를

동시에 LA를 떠난다. 그는 곧바로 젊은 야심가 에이전트였던 힐러드 엘킨스에 의해 발탁된다. 엘킨스는 복싱 전기물인 에 출연케 하며 그를 영화계에 입문시킨다. 로버트 와이스가 감독하고 폴 뉴먼이 출연한 영화였는데, 와이스는 맥퀸을 ‘약간 시건방진’ 인물로 생각하면서도, 옥상 단검 결투 장면에서 그가 보여준 ‘응축된 채로 뿜어져 나오는 기운’을 선선히 인정했다. 그가 주연을 맡은 첫 영화는 SF 물인 이었는데, 그는 외계에서 온 아메바 같이 생긴 맹독성 생물체와 맞서는 역할을 해야 했다. “녀석이 기어 온다! 녀석이 다가온다! 녀석은 너를 산 채로 삼켜버린다!” 1956 재규어 XKSS를탄 스티브맥퀸의할리우드 세트장에서의모습이다 그는이차를 ‘초록색쥐‘라고 불렀고두번소유했다. 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말괄량이 여배우인 닐 아담스를 만나게 된다. “안녕, 너 예쁘다.” 그는 이렇게 말했다. “너도 예쁜 걸.” 그녀의 응수였다. 둘은 1956년에 결혼하여, 딸 테리,그리고 아들 채드를 두었다. 그리고 그 결혼은 그의 전성기 내내 유지되었다. 비록 말썽분자로 오명을 얻었던 그였지만, 맥퀸은 다정하고 주의 깊은 아버지였는데, 특히 아이들이 그와 함께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그랬다. 1960년, 존 스터지스 감독의 영화 을 PHOTOGRAPHY: GETTY IMAGES/JOHN DOMINIS 58 THE JAGUAR

MCQUEEN 촬영할 때, 큰 사건이 일어난다. 맥퀸의 솜씨 좋은 비주얼 캐릭터화는 당시 스타이던 율 브리너를 자극했고, 그는 결국 맥퀸을 ‘씬 스틸’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. 삼 년 뒤, 스터지스는 그를 에 캐스팅하는데, 이 작품에서 그는 (형무소장과 만나는 장면에서) 어떻게 미소로 상대를 모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. 그의 성적 매력은 (1968)에서 최고조에 달했다. 페어 더나웨이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하는 장면에서였다: “너, 플레이하니?” “나랑 해볼래?” 닐은 그를 “약한 척 하려는 마초 맨”이라고 불렀는데, 그의 사내다움이 잘 표현되기론, 1968년 작품 의 핵심 장면이었던, 샌 프란시스코 경사 도로를 거칠게 달리며 추적하는 장면이 최고였다. 이 장면에서 맥퀸은 무스탕 GT390을 타고 질주했다. 그 모습을 사진가 윌리엄 클랙스턴이 사진 형태로 완벽하게 복원해놓았는데, 클랙스턴은 1950년대 쿨 스쿨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. 하지만 베이커가 낮에는 (실은 작은 지하 재즈 클럽 바깥 그 어디에서도)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았던 반면, 맥퀸은 아웃도어 형 인간이었다. 맥퀸과 클랙스턴은 로드 트립을 자주 갔는데, 공감대는 고성능 기계, 가장 대표적으로는 진록색 재규어 XKSS (본질적으로 르 망 대회에서 우승한 D 타입 재규어의 온로드 버전이다.)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었다. 맥퀸은 이 차량을 무척 아꼈는데, 코벤트리 공장 화재로 단종되기 전 탄생한 16대 중 한 대였다. 그는 1969년 이 차량을 팔았다가 1977년 재구입하여 죽을 때까지 보유한다. 60년대 후반 일련의 성공으로 맥퀸은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졌거나, 그렇다고 믿었다. 회사 솔라 프로덕션을 차렸고, 여기에서 그는 그간 레이싱하는 동안 머릿속에 구상해두었던 필름 제작에 착수한다. 레이싱 카 드라이빙 경험에 대한 찬가인 은 실제 차량, 실제 트랙에 선 실제 레이서들을 캐스팅했다. 한두 명 매력적인 여성도 등장하지만, 욕망을 자아내는 진짜 사물은 바로 차량이었다. 하지만 맥퀸의 후원자들은 적절한 스토리를 원했다. 원래 감독이었던 스터지스는 이 요구에 맥이 빠졌고, 돈줄을 대던 사내들은 자신들이 고른 어느 헐리우드 작가로 감독을 교체해버린다. 촬영현장에서 새 감독이 ‘한 번 더가자’고 요청했을 때, 맥퀸은 이렇게 응대했다: “이봐, 한 번 더 가야 할 때가 있으면 내가 말할게.” 촬영에는 6개월이 걸렸는데, 그 기간 동안 6백만 달러라는 예산을 심각하게 초과해버렸다. 결국 은 1971년 박스 오피스를 들이받더니 타 버렸고, 프로듀서로서의 그의 이력 또한 모두 날려버렸다. 이제 그는 다시 영화 스타일뿐이었다. (1972)에서 그는 탈주범 돈 멕코이 역을 맡았는데, 알리 맥그로의 뺨을 때린, 지금은 유명해진 장면으로 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다.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맥그로는 그와 닐이 갈라선 뒤,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. 그 뒤로 그는 (1973), (1974)에서 꽤나 신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. 그러나 그의 오래된 마리화나 취미는 이때 즘이면 코카인 사랑으로까지 진화해서, 스크린 바깥에서의 그의 긴 머리와 턱수염은 찰스 맨슨 일당처럼 보이게 했다. (몇 년 전 맨슨의 살인명부에는 맥퀸이 있기도 했다.) 1977년 결국 그는 맥그로와 이혼하고, 1979년 12월 를 촬영하던 중, 암의 첫 번째 신호가 감지된다. 11개월 뒤, 여러 관례적이고 대안적인 치료법들을 시도한 뒤, 또 모델 출신인 바바라 민티와 세 번째로 결혼한 뒤, 그는 멕시코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. 그의 주치의들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방법으로 몇 개의 종양을 제거한 뒤 12시간 만의 일이었다. “당신에게 닿게 하나요? 정말로 당신에게 그 손이 닿나요?” 재클린 비셋은 에서 그에게 물었다. 물론 그는 그렇게 했다. 삶과 죽음에서, 스티브 맥퀸의 매력은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타는, 언제라도 싸움에 임할 준비가 된 외면의 안쪽에는, 외삼촌의 농장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는 단순한 즐거움을 재창조하기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어느 유기된 작은 소년의 연약한 영혼이 숨어 있었다는 의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. THE JAGUAR 59

 

JAGUAR

THE JAGUAR MAGAZINE

 

재규어 매거진은 매혹적인 디자인에서부터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창조적인 것들을 찬양합니다

최신 호에서는 최근 가장 흥미로운 TV 드라마 캐릭터 중 하나인 빌라넬을 탄생시킨 제작자, 루크 제닝스부터 인공 지능이 창의력을 갖출 수 있는가에 대해 탐구한 수학자, 마커스 드 사토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스토리를 실었습니다. 그리고 재규어 I-PACE와 함께 떠난 미식의 천국 미국 포틀랜드 탐험 기사와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재규어 XE를 함께한 프랑스 방문 스토리도 있습니다. 이 외에도 다양한 흥미로운 기사들이 많습니다.

© JAGUAR LAND ROVER LIMITED 2020


상기 연비는 제조사가 국내 법률에 따라 공식적인 인증을 통해 얻은 결과입니다. 단, 차량의 실제 연료 소비량은 운전자 및 주행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해당 수치는 비교 목적으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.
상기 정보, 제원, 이미지들은 실제 국내 적용 사양과 상이할 수 있으며 성능 개선을 위하여 사전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. 정확한 모델별 옵션 적용 사항은 가까운 재규어 랜드로버 공식 딜러 전시장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.